[기고] 주부 정치(후편)

수필가 박혜영

편집부 | 기사입력 2020/02/05 [10:46]

[기고] 주부 정치(후편)

수필가 박혜영

편집부 | 입력 : 2020/02/05 [10:46]

 

 



나는 야채를 다듬고 삶고 무치고 하는 수고로움을 무척 부담스러워서 한. 잠시 정성을 놓치고 나면 맛이 이상해져 비난이 심하다. 그래서 가능하면 자연 그대로 생채를 즐겨 먹는다. 건강에도 좋고 그것이 나의 약점을 드러내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내가 잘하는 음식엔 특징이 없다. 그런 나에게 항상 음식을 공수해 주는 동생은 언니가 잘하는 음식은 딱 세 가지라 말한다. 캔 뚜껑 따는 것, 김 자르는 것, 계란말이.

그 엄마에 그 딸인가! 아침 시간은 각자 바쁜 관계로 시리얼로 아침을 대신하고 모두 일터로 향했다. 늦은 저녁 집에 들어오니 남편이 아주 재미있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평소와 달리 집안에서 음식 냄새가 났다. 누군가 요리를 한 것이다. 식탁에는 아름다운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어묵도 볶았고, 계란말이도 있었다.

미역국도 있다. 그런데 국 맛이 묘했다. 성인이 된 딸아이가 끓인 미역국 재료는 소고기가 아닌 삼겹살이었다. 어찌 이런 일이! 그러나 우린 기꺼운 마음으로 그 음식을 먹었다. 남편은 국 끓이는 중간에 그 광경을 보았지만, 냥 두었다고 했다. 어미가 가르친 것이 없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어느 날 라디오에서 손숙 씨가 결혼한 딸이 시장에서 시금치와 열무를 구분 못하더라는 방송을 듣고 웃음 짓던 내가 생각났다. 나 역시 별반 다를 게 없는 행태 아닌가! 그러나 행복한 밥상이었다.

비단 음식 정치만이 아니라 아이들이 자라면서 주부로서 역할이 점점 줄어든다. 꼭 닫힌 아이들 방 입구에서 서성이며 무어라 한마디 말을 붙여보려 하지만 대화는 단절이다. 세대가 달라, 의식이 달라 말을 해도 나만 손해를 본 것만 같은 허전함. 변해버린 외형적 모습처럼 그들에게 가졌던 내 영역도 하나씩 퇴색되어간다.

학원의 선택에서 친구 관계까지 고유한 권한을 갖던 엄마 역할은 이젠 아이들 식사나 옷가지 세탁, 방 청소가 다다. 내 위상을 떨치기 위해 한 마디 건네면 퉁명스러운 대답으로 상처를 받는다. 아이들이 성장하며 많은 기대를 가진 주부는 하나하나 내려놓아야 한다. 마음에 거리가 멀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작아지는 영역을 우습게 생각한 적이 있다. 부모를 버리는 패륜적 사회문제를 보며 자식을 잘못 가르친 부모를 맹렬히 비난하던 시선은 이제 부모를 홀대하는 몹쓸 자식으로 치부한다. 자식 입장보다 부모 입장으로 시선이 가는 자신을 보면 나에게도 나이가 녹아들었음을 인식한다.

주부 정치는 단순히 음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포괄적으로 가정교육이 다 포함된다. 생활에서 반듯하고 정직한 아이들의 뒤에는 항상 그런 자식을 만든 부모가 있다. 가정은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로 내가 아이들에게 비치는 모습이 고스란히 투영된다.

부모의 행동과 말은 아이들에게 위대한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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