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의 시인을 찾아서, 정대구 시인]

“나에게 붙잡혀 시달려 준 사람,사물들에게..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평생 시와 삶이 하나 된 겸손하고 소박한 삶, 겉치레 없는 뼈의 시인
등단 후 27권의 시집, 균형 잡힌 보통사람·양심 있는 생활인의 현장 위해 노력

서미영 기자 | 기사입력 2020/08/01 [13:16]

[화성의 시인을 찾아서, 정대구 시인]

“나에게 붙잡혀 시달려 준 사람,사물들에게..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평생 시와 삶이 하나 된 겸손하고 소박한 삶, 겉치레 없는 뼈의 시인
등단 후 27권의 시집, 균형 잡힌 보통사람·양심 있는 생활인의 현장 위해 노력

서미영 기자 | 입력 : 2020/08/01 [13:16]

▲ 화성시 송산면 지화리에 자리한 정대구 시인의 자택, 서재에서.  © 화성투데이

 

 

장맛비가 호도도독 떨어지는 7월의 끝자락, 살다보면 어느새 메말라져가는 감성에 조근 조근 낮은 음성으로 시를 선사하는 시인이 있다. 화성에서 평생의 삶을 시로 표현하며 일상을 시로 살아내는 정대구 시인과 송산면 지화리 시인의 집에서 의미 있는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정대구 시인은 1936년 생으로 올해 85세를 맞는다. 56년 송산중·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기 시작 해 서울 충암고를 거쳐 명지대와 숭실대 강사 생활에 이어 경남 양산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김삿갓 연구로 숭실대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 하기도 한 시인은 평생을 교육 현장에 몸 담아 제자양성에 힘쓰며 시를 써왔다. 1972년 대한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한 이래 시와 삶이 말 그대로 ‘버무려진’, 시로 표현하는 삶을 살고 있는 시인이다.

 

시인으로 박사학위를 그의 나이 쉰이 넘어 취득했는데, 이유가 좀 남다르다.

 

“어머니께 선물로 박사학위를 드리고 싶었어요. 큰집의 사촌 형님도 박사, 작은 집의 사촌 아우도 박산데 어머니가 서운해 하시는 듯해서 쉰이 넘어 박사 학위 선물을 안겨드렸죠.” 라고 말하는 효자 시인.

 

“원래 나는 꿈이 농부였어요, 초야에 묻혀 은자생활을 하려 했지요. 그런데 몸이 너무 약해서 농사일을 하려면 넘어져서 뼈가 부러지는 등 자꾸 다치는 거야(웃음..). 어려서부터 국어를 참 좋아했어요.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시는 다 외우고 다녔으니까. 그러다가 지금의 명지대학 전신인 서울문리 사범대를 졸업하고 고향 송산에 내려와 바로 교편을 잡았거든요. 그때부터 아이들과 시를 썼어요. 아이들을 가르치며 시를 쓴다는 게 내 천직이라는 걸 알았죠.”

  

정대구 시인은 72년 대한 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나의 친구 우철동씨’ 라는 시가 당선 되면서 문단에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시의 주인공인 우철동 씨는 서울문리 사범대에서 만난 아우다. 미리 전화도 없이 생각날 때 서로 언제든 찾아가고 자리에 없으면 그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린다. 밤새도록 아무 거리낌 없이 대화를 나누며 마음의 깊이가 깊어진다. 집에 돌아와 시간이 흐르면 깊어진 우정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사이였다고 말한다.

 

사람과의 관계도 참 시적이다.

 

시의 주인공인 우철동 씨는 생전에 “정대구 시인은 무척 겸손한 사람이다. 그는 누구 앞에서도 자기를 잘 내세우지 않고 상대방을 존중해 준다. 그의 시를 대하면 그 일상의 일들이 깊은 성찰의 자료가 되어 시로 생산되고 있음을 본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아픔을 깊이 고뇌하고 극복해 가면서 꿋꿋하게 자기의 시 세계를 열어나가고 있다. 그는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양심 있는 생활인의 현장이 되기 위하여 노력하는 시인이며 균형 잡힌 보통사람을 지향하는 시인이다.”라고(화갑 축하 문집 ‘만남의 빛살 속에서’ 발췌) 말했다.

 

생전에 조병화 시인도 그의 시적 감성을 정감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 “...어린이같은 큰 사람/ 천진무구한 넓은 사람/세월이 없는 사람..."이라는 싯귀가 담긴 정 시인 만을 위한 축시를 보내오기도 했다.

 

 

 

▲ 시인의 젊은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흑백 사진들  © 화성투데이

 


“이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탁’ 무릎을 칠만한 시, 나올 때 까지 멈추지 않겠다.”

 

나의 친구 우철동씨/ 겨울 기도/ 무지리 사람들/ 우리들의 베개/ 두 귀에 바퀴를 달고/ 수색쪽 하늘/ 남촌에 전화를 걸며/ 네거리에 선 아이들/ 뿌리에 노래/ 어머니의 응답/ 동물원에 갇힌 나를 본다/ 양산시편/ 구선생의 평화주의/ 양산일기/ 곰 할머니 고맙습니다/ 너가 바로 나로구나/ 구름과 놀다/ 칼이 되어/ 흙의 노래/ 위대한 김연복 여사/ 착한 토끼/ 제부도 들어가는 길/ 백지/ 바쁘다 봄비/ 만날 수 있을까/ 개구리의 꿈/ 지금까지 난 그렇게 신통한 아이는 본 적이 없어요

 

시인은 화성에서 삶과 시를 버무리며 27권의 시집을 일궈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만한 시가 나올 때까지’ 라고 말하는 것은 한 사람에게라도 더 시의 힘을 나누고 싶다는 그다운 순수한 시적 욕심이 아닐까. 이미 익명의 누군가에게 뭉클하고 찡한 공감을 자아냈다면 그 시는 살아있고 이상을 이룬 게 아닐까싶다. 시인은 삶을 예리하고도 따뜻한 시선의 관찰을 시로 살아내고 충분히 공감을 자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지금도 아이처럼 초저녁에 잠이 들어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시를 씁니다. 늘 해오던 일상이지요. 그리고 요즘 등단하는 젊은 시인들의 시를 읽지요. 또 그들을 통해 내가 모르고 있던 현대적 감각을 배우기도 합니다. 배움이란 끝도 없지요. 배우는 것에 나이는 중요치 않아요. 나는 시가 내 인생의 목표입니다. 시가 되기 위한 과정으로 사물을 골똘히 살피는 일은 세상의 이치를 헤아려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참 중요한 일이지요. 시를 잘 쓰는 사람들을 보면, 이들의 인생 방향이 오로지 시를 쓰는 것에 올인 되었으면 합니다. 이것저것 해보다가 시를 쓰기에는 시의 깊이에 들어가 보는 시간이 짧아 질 수 있으니까요. 시인이란, 오로지 시의 세계에 더 깊이 들어가 결국엔 시 밖에 없어야 하니까요.”

 

화성에는 정대구 시인이라는 거대한 산을 닮은 문인이 살아있다. 지금도 그는 시 라는 감성자양분인 산소를 내뿜는다.

 

아직도 정 시인의 소박하고  정감어린 따뜻한 음성이 맴돈다.

 

“시의 아름다움은 진실을 꾸미지 않는데 있다고 봅니다. 성실한 삶의 진솔한 표현 그대로 표현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하지요. 비록 어렵더라도 말이예요.”

 

 

 

■ 정대구 시인

 

·1936년 화성에서 태생

·서울문리사범대학, 명지대학교를 거쳐 숭실대학교 문학박사 취득

·1972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나의친구 우철동씨’가 당선되어 등단

·고향 송산중고, 서울 충암고를 거쳐 명지대, 숭실대, 수원대, 성결대, 삼육대 등에 출강

·양산대학교 교수 역임

·현재는 송산도서관, 여의도 복지관, 노작홍사용문학관에서 현대시와 한시, 논어를 강의하며 쉬지 않고 시를 쓰고 있다

·정대구시사랑http://cafe.daum.net/jtgpo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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